지리산 대성계곡은 오랜 옛날부터 보기드문 기도처로 뭇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근세에 들어서는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피의 제전이 역사를 간직한 길고 깊은 골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화개동천 맨 안쪽에 숨어있는 협곡의 수림과 남향으로 배치된 기암 절벽, 그리고 그 위용의 품위를 한 단계 높여주려는 듯 흐르는 물줄기는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로 손색이 없다.
세석평전을 거느리는 영신봉의 위엄은 세석과 더불어 대성골을 이상향의 대상으로 삼게 만들어 오랜 옛날부터 과학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성골을 찾아나서는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대성골 가운데서 가장 깊숙이 숨겨져 있는 영신봉 아래 영신대는 지리산에서 최고의 기도처로 각광 받으면서 치성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 영험스런 자태는 금방이라도 소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듯해 치성객의 애간장을 태우기에 충분하다.

우리 민중의 정서를 방증하는 대성골의 소망하는 그러나 온 산하가 동족상잔의 전란을 겪으면서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변하기도 해 우리에겐 비운의 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성골은 빨치산 투쟁의 최대의 비극으로 이 곳에서 수백여명의 빨치산이 몰살당했다. 정충제씨가 기록한 "실록 정순덕"과 이기형씨가 쓴 "죽음의 골", 그리고 이태의 "남부군"등은 1950년대 초 지리산 일대에서 치러진 군?경과 빨치산의 처참한 격전을 기록으로 전해주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성골의 비극이 가장 격렬하고 처절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비운의 사연을 간직한 대성골을 찾아가는 길은 화개동천을 따라 잘 포장된 길을 올라 대성교에서 시작된다.


화개장터에서 12km지방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50가구가 사는 의신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마을 앞족으로 흐르는 이 계곡은 암반과 숲이 많아 매년 여름철 많은 피서인파가 즐겨찾느 곳이기도 하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의 하나이다. 쌍계사에서 3km지점에 있어 쌍계사를 답사한 후 불일폭포를 등산하면 좋은 여행이 된다.
쌍계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4백m쯤 오르면 국사암이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삼법화상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건립하여 수도하던 곳으로 삼법화상이 입적한 후 110년만에 진감선사가 중건했고, 이로 인해 국사암이라고 이름 지었다.
또 이 국사암 입구에는 진감선사가 심었다는 사방으로 뻗은 네가지로 된 거목인 사천왕수가 특이하다.
국사암 가는 삼거리에서 불일폭포 방향으로 가면 커다란 반석의 바위가 있는데 고운 최치원이 학을 부르며 놀던 곳이라 하는 환학대이다.
여기서부터 최치원이 찾아다녔다는 이상향 즉 삼신동의 운치가 느껴진다. 숲속을 지나면 널따란 불일평전에 불일휴게소로 불리는 아담한 집과 정원이 특이하다.
이 휴게소에서 약 2백m가량 깍아지른 듯한 비탈길을 내려가면 거대한 깊은 곳에 있는 불일암 밑의 만길절벽에 흘러내리는 불일폭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중간의 학연에서 돌려 다시 쏟아져 내린다.
높이 60m, 폭3m의 지리산 유일의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거폭으로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 폭포이며, 계절에 따라 수량의 차이는 있으나 연중 단수의 고갈은 없다.
폭포 밑에는 용추못과 학못이 있어 깊은 자연의 신비를 안겨주기도 한다. 떨어지는 물소리는 탄금의 소리가 울리고 고려시대 학이 날아오르는 모습에 비쳐 자청색이 영롱해서 놀았다는 청학봉, 청학동이라고 이름지은 봉과 골이 있으며. 남명 조식의 시와 정재규, 서산대사의 시들이 있어 곱고 아름다운 신비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불일폭포 오른쪽에는 불일암터가 있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수도했다고 한다. 그 곁으로 삼신봉 가는 등산로가 있어 역사와 문화를 함께 느끼며 심신을 단련하기 좋은 곳이다.